8. 백두는 기이한 곳이었다. 모든 것이 뒤집어진 종말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문명의 조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랬다. 정글과도 같은 항구를 뚫고 들어가 잘 포장된 시멘트 도로를 보았을 때도, 군용 트럭에 탄 채 정제되지 않은 숲길을 달렸을 때도, 고전적인 미남이 부드러운 실크 셔츠를 입은 채 여성 군인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도. 후오 시엔은 자신을 덮쳤던 그 정체...
7. “쟤 뭐야?” 덜컹거리는 트럭 안에서 운전석을 가리키며 유다가 물었다. 루이퍼드는 왼손에 낀 너클을 마른 헝겊으로 닦아 내리다가 금묘영의 무기질한 옆모습을 한 번 힐끗 보고는 성의 없이 답했다. “군통 직속 기관인 군정보조위 천궁 소속 금묘영. 한 마디로, 여기 왕의 최측근.” “왕의 최측근을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건가?” 후오 시엔이 물었다. ...
6. 3일 후 커다란 잠수정 한대가 백두 서해의 앞바다 위에 떠올랐다. 꽁꽁 묶였던 돛대가 튀어 오르고 돛이 활짝 펴지며 대해를 활강했다. 도금한 고무 타이어로 둘러 쌓인 선미가 쿵, 하고 육지에 닿았다. 갑판 위로 쏟아져 나온 사가르마타의 승려들은 사위를 둘러보며 그 아름다운 경치에 넋을 빼앗겼다. 삭막하고 척박한 고산과는 다른 푸른 녹음에 다들 입을 헤...
5. 싸아-. 싸아-. 가끔 이렇게 눈 부시게 출렁이는 바다를 보면 상상할 수가 없다. 이 너른 바다가, 이토록이나 잔잔한 파도가 어떻게 그 거대한 문명을 집어 삼키고 인류를 그토록이나 잔인하게 쓸어 버린 것인지. “시엔님! 저기, 아루나찰!” 뿔 달린 짐승의 뼈를 투구처럼 눌러 쓴 수도승이 손가락을 들어 높게 솟은 산지를 가리켰다. 손 끝에 걸린 설산이 ...
4. 세계 대해일 이후, 위성기지국과 전파 신호가 모두 끊겼고 때문에 살아남은 나라가, 또 잠기지 않은 땅이, 얼마나 되는지 어디에 있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솔롱고스라는 단어 하나에 좌중이 술렁이는 까닭은, 그들이 중무장한 동쪽의 중공군을 어떻게 초전박살냈는지 알고 있어서였다. 피와 뼈가 비처럼 쏟아지던 전쟁들이 그나마 20년 안에 종식될 수 ...
3. 사가르마타는 세계 대해일 이전부터 끊임없이 분쟁과 분열을 반복해 온 지역이었다. 인류의 90%가 사라진 종말 후에도 그 싸움은 지리멸렬하게 이어졌다.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행정가들 사이의 권력 다툼, 종파와 민족 간의 갈등, 임시정부 출신과 비임시정부 출신들의 이념 대립.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가 일단락 된 것은 한족 토벌 전쟁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
2. 검소하고 수수한 백궁과 달리, 홍궁이라 불리는 포탈라 궁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석탑 만큼이나 높은 천장에서 내려온 거대한 8개의 기둥은 모두 빨갛고 노란 원색의 천으로 감싸여있었다. 기둥 끝, 천장 아래에 난 네모난 창에서는 궁 안을 비추는 유일한 햇빛이 신의 가호 처럼 쏟아져 내렸다. 사락-,사락-. 유리 없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고산의 바람이 붉은...
1. 챠랑-,챠랑-. 나무로 지은 고즈넉한 사찰에 풍경이 울렸다. 풍경을 스친 건조한 바람은 사찰을 지나 절벽 아래의 금줄을 흔들었다. 불경을 적은 오색 깃발들이 풀럭 풀럭, 춤을 추듯 휘날렸다. 자연이 쥐여 준 소리 이외에는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더 없이 고요하고 적막한 산지(山地)였다. 아니, 신께서 남겨 주신 가혹한 섬이었다. 철썩-,철썩-...
『 종말은 신이 인간에게 기회를 주듯 천천히 다가왔다. 』 신화 속 이야기나 마야 문명의 예언처럼 지구의 종말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았다. 과학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인간의 이기심과 자만이 더 오를 곳 없이 높아질 무렵, 대서양 한 가운데에서 수백 마리의 고래가 배를 뒤집어 깐 채 떠올랐다. 어떤 날은 해일과 지진이 예고없이 지구를 덮쳤고 또 다른...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